본문 바로가기

밀크나비's 시시콜콜/밀크나비's 요리수첩

입맛 없을 때, 매콤한 오징어덮밥-



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,
11시 넘어 느즈막히 일어났다.
늦게 일어나면 뇌도 늦게 깨는 기분에 입맛도 없고, 늘어지는데.
그저께부터 냉장고 안에 그냥 넣어뒀던 오징어가 생각나서-
그냥 주부의 숙제라는...기분으로 해야지..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아니 필수적으로
오징어 세마리를 꺼내 굵은 소금으로 박박 씻어 껍질을 벗길까 말까 고민하다가.
벗기기로 하고.
손가락을 집어 넣을 만큼 작게 구멍을 낸 다음 고무줄을 잡아 당기듯
손가락을 넣어 주욱-주욱 껍질을 당겨 벗겨내었다.

껍질을 벗겨내는 지루한 작업을 하는 동안
내가 왜 이렇게 우울하고, 가슴 답답한 채로 먹을 건 다 해 먹고 살아야 하나.
그런 생각들에 답답해져 왔다.
특히 껍질이 주욱- 따라오지 않고 짧게 짧게 끊어지고 있을 때- 드는 생각.
아기를 꼭 가져야 하나. 아기를 가지는 것에 대한 모든 생활의 포커스가 맞혀져 있는 동안
내 자신은 한없이 작아져 녹아내려있기도 하고, 나의 이러한 소소한 마음들을 돌보아 주지 않는
남편이 못내 미워 왜 나만 이렇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술렁술렁한 잡음들 때문에
가슴 안이 온통 오징어껍질만큼 질겨져 있었다.
껍질을 거의 다 벗겨내고 씻어낼 때 쯤엔- 모르겠다...잘 먹고 일단은 내 몸만 돌보자는 생각으로-

결혼을 하고 나서는...결국은 나를 돌보아 줄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걸 점점 깨닫고 있으므로...
혼자 있을 때에도 누군가와 먹는 것처럼 잘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.
엄마밥이 그리운 순간...


맛술 좀 뿌려서 재워놓고-
프라이팬 달궈서 마늘 약한 불에 볶아 향을 낸 다음 센 불로 켜서 오징어를 투하-
치이이이~~~익~~~~~소리가 날 때쯤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~
오징어 물 생기기 전에 재빨리 볶아내야 한다.
센 불에 살짝 볶은 다음 불을 줄이고 양배추, 양파, 당근, 고추를 투하한다.
뭘 먼저 넣고, 나중에 넣고 따윈 없다.
그냥 나 혼자 구색 맞추기 좋게 먹는 요리이니까 최대한 지치지 않는 공정과정으로-
무조건 한꺼번에 우르르르르~~~~~쏟아넣고, 볶아준다.
볶기 시작할 때쯤 고추장, 고춧가루, 매실액, 참기름 조금, 간장 조금 넣고 골고루 섞어 준다.
양념이 잘 배었다 할 때쯤 불을 끄고, 깨소금 솔솔 뿌려주면-

오징어덮밥 완성이 되었다!



밥을 비벼먹기엔 국물이 조금 있는 것이 나은데.
오징어 자체에서 나오니 딱 적당하다..




입맛이 없으므로 밥은 조금만 넣고~ 오징어를 덮으면 그래도 꽤 많아 보인다.
우후~훗.




매일 혼자 밥을 먹다 보면 잘...먹었다...라는 생각보다는.
오늘 한 끼도 잘 해결했구나~라는 생각이 든다.
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영양제가 나오면 대박이겠구나..라는 생각을 매일 하던 내가~
오늘은 오징어숙제로 오징어덮밥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.
그만큼 몸도 건강해졌으려나?!

비가 잠시나마 그쳤다는 이유만으로도
활기가 도는 오후-

손이 큰 내 특성으로 이따 저녁까지도 오징어덮밥으로 마무리할 거란 후문이...
후후훗~~~
입맛 없을 때, 매콤한 오징어덮밥 추천합니다.
^ - ^..